July 01, 2011

서정주, 나의 시

어느 해 봄이던가, 머언 옛날입니다.
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 안 동백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.
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듯이
앉아 계시고, 나는 풀밭 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쓰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이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습니다.
쉬임없이 그 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.

그 뒤 나는 연연히 서정시를 썼읍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
주워다가 기리던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.

그러나 인제 왠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아줄 이가 땅 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
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.

No comments:

Post a Comment